탄생지에서 망명지까지

망명까지의 초읽기

이후 9년 동안, 달라이라마께서 한편으로는 중국의 전면적 군사 점령을 피하기 위해 애쓰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침략군에 맞서는 티베트 저항 세력 사이에서 커가는 분노를 달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1954년 7월부터 1955년 6월까지 평화 협상을 위한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해서 마오쩌둥과 저우 언라이, 주 더, 덩 샤오핑을 포함한 다른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월부터 1957년 3월까지 달라이라마께서는 부처님 탄신 25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시기 위해 인도를 방문하셨습니다. 티베트 민족에 대해 늘어만 가는 잔혹한 행위에 대한 낙담시키는 소식들이 계속해서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달라이 라마 께서는 1958년에서 1959년으로 가는 겨울 라사에서 마지막 승려 시험(게셰 하람빠)을 보셨습니다.

티베트의 라사에서 마지막 게셰 하람빠 시험 중 달라이라마
인도로의 망명

1959년 겨울의 어느 날(3월 10일) 중국 공산당 치앙 친우(Chiang Chin-wu) 장군은 달라이라마께 중국인 무용단의 공연을 보러 와달라는 겉보기에는 순수한 초대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어떤 티베트 군인도 달라이 라마를 수행할 수 없으며 경호원들은 비무장인 상태여야 한다는 새로운 초대장을 다시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라사의 민중들에게는 심각한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곧 노르부링카(Norbulingka) 궁전 주변에 모인 수만 명의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목숨을 향한 위협을 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59년 3월 17일 예언가 네충신(Nechung)과의 논의 동안, 달라이라마께서는 티베트를 떠나야만 한다는 분명한 조언을 받았습니다. 비록 성공적인 탈출에 있어 상충수가 무섭도록 높아 보였지만, 예언가의 결정은 성하께서 행하셨던 신성에서도 동일한 답을 받았을 때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10시가 되기 몇 분 전 티베트 군인으로 변장을 하신 달라이라마께서는 소수의 수행을 받으며 수많은 인파의 곁을 지나쳐 끼추(Kyichu)강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달라이라마께서는 그의 직계 가족 포함한 나머지 수행단을 만나셨습니다

1959년 히말라야를 넘는 망명길에서